
커뮤니티를 수도 없이 옮겨 다닌 적이 있습니다. 자기계발, 투자, 마케팅, 네트워킹까지. 시간과 돈을 꽤 쏟아부었는데 어느 순간 그 모든 배움이 AI 앞에서 순식간에 평준화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배우는 방식 자체를 다시 배워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언러닝(Unlearning)이라는 개념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된 계기였습니다.
AI가 꺾어버린 'J커브' 앞에서 배움의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하는 이유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AI의 발전을 J커브(J-Curve) 구조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J커브란 초기에는 완만하게 움직이다가 특정 변곡점 이후 수직에 가까운 기울기로 치솟는 성장 곡선을 말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 변곡점 직전이라는 게 그의 시각입니다. 저도 AI 툴을 업무에 직접 적용해보면서 이 감각을 조금씩 실감하고 있습니다.
현재 AI가 실질적으로 해내는 건 효율화와 자동화 정도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막상 써보면 뻥카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단계인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즉 특정 도메인이 아닌 인간 수준의 범용 지능이 실현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AGI란 쉽게 말해 엄청난 전문가 한 명이 24시간 내 옆에서 맞춤형 조언을 해주는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그 너머에는 ASI(Artificial Super Intelligence),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는 단계까지 로드맵이 그려져 있습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닙니다. 테슬라 FSD(Full Self-Driving)가 이미 미국 도로를 달리고 있지만 실제로 쓰는 사람은 구매자의 15% 수준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기술을 못 믿는 게 아니라 의식이 기술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의식의 발달 속도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영역에 속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필요한 건 최신 AI 툴을 익히는 게 아니라, AI가 J커브를 꺾고 올라갈 때 어떤 가치가 폭등할지를 먼저 파악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 커뮤니티를 전전하면서 정작 못 했던 게 바로 이 '지도 그리기'였습니다.
- 현재 AI: 효율화·자동화 중심 (ANI 단계)
- 다음 단계 AGI: 범용 지능, 전문가급 조언 상시 가능
- 최종 단계 ASI: 인간 지능 초월, 인간이 상상하는 것을 실현하는 기술
- 핵심 병목: 기술이 아닌 인간 의식의 발달 속도
지식의 가치가 무너질 때 폭등하는 단 하나, 관계자본
AI 시대에 가장 먼저 가치가 떨어지는 건 지식입니다. 예전에는 특정 분야를 깊이 아는 것만으로 희소성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제 GPT든 Claude든 검색 한 번이면 전문가 수준의 정보가 쏟아집니다. 제가 시간과 돈을 들여 커뮤니티에서 배웠던 것들이 지금은 AI 프롬프트 몇 줄로 대체되는 걸 보면서, 솔직히 허탈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올라가는 가치는 무엇일까. 바로 관계자본(Relational Capital)입니다. 여기서 관계자본이란 단순한 인간관계(네트워킹)가 아니라, 인과관계(맥락)까지 포함한 개념입니다. 한자로 '관계(關係)'를 보면 얽히고설킨 구조를 담고 있습니다. AI가 정보는 줄 수 있어도 줄 수 없는 게 바로 이 맥락, 즉 원인과 결과의 흐름입니다.
예를 들어 커뮤니티를 19년 전에 시작해서 2만 명을 모은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AI에게 "커뮤니티 운영법"을 물으면 정보는 나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자퇴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면서 쌓은 맥락은 AI가 줄 수 없습니다. 그게 바로 맥락 부자, 관계 부자의 정체입니다. 제가 여러 커뮤니티를 전전했을 때 돈을 쓴 이유가 사실 정보가 아니라 그 맥락을 사려는 것이었다는 걸 이제야 이해합니다.
마케팅 관점에서도 이 변화는 뚜렷합니다. 한 번 노출로 구매를 유도하는 방식은 점점 통하지 않습니다. 소비자의 머릿속에 "돈 하면 A, 커뮤니티 하면 B"처럼 키워드와 인물이 맥락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이 맥락 설계, 즉 인과관계를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이 AI 시대의 진짜 프리미엄 자산을 보유한 사람입니다.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는 AI 전환기에 대체되기 어려운 역량으로 사회적 상호작용과 고차원 인지(맥락 판단)를 꼽은 바 있습니다(출처: McKinsey Global Institute).
언러닝·리러닝·뉴러닝, 실제로 써본 AI 시대 독학법 3단계
하루에 두 시간씩 공부해서 인공 장기 개발에 뛰어든 사람이 있습니다. 과학자가 아닙니다. 대기업에서 20년 일한 직장인 출신입니다. 그 방법이 언러닝(Unlearning) 3단계 구조입니다. 제가 이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는데, 실제로 적용해보니 기존의 '많이 읽고 많이 외운다' 방식과는 결이 완전히 다릅니다.
1단계는 언러닝(Unlearning)입니다. 여기서 언러닝이란 기존에 옳다고 믿어온 지식·공식·상식을 의도적으로 내려놓는 과정입니다. 쉽게 말해 낡은 지도를 버리는 것입니다. 비즈니스 교과서의 90%는 이미 환경이 바뀌어 맞지 않습니다. 아는 것이 30년 전에는 정설이었어도, 세상이 1년 만에 어마어마하게 바뀌는 지금은 그 정설 자체가 발목을 잡습니다. 가위바위보에서 보자기가 탄소 섬유로 바뀐다면 가위의 논리도 바뀌어야 한다는 발상이 언러닝의 시작점입니다.
2단계는 리러닝(Relearning)입니다. 낡은 지도를 버린 자리에서 본질을 다시 봅니다. '나이는 노화가 아니라 데이터 축적'이라는 재정의가 그 예입니다. 레이어가 많이 쌓인 사람일수록 맥락이 두텁다는 새로운 정의를 만들어내는 단계입니다. 전공 70학점을 하루 두 시간씩 공부하면 보름이면 끝난다는 계산처럼, 기존 프레임을 걷어내면 전혀 다른 경로가 보입니다.
3단계는 뉴러닝(New Learning)입니다. 재정의된 본질 위에 현재의 AI 기술을 얹어 자신만의 초현역(超現域) 영역을 창조하는 단계입니다. AI, 3D 프린터, 줄기세포를 엮어 신장 재생이라는 길을 여는 것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영역들을 연결하여 새로운 정답을 직접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2025년 미래 직업 보고서에서 '창의적 연결 능력'과 '복합 문제 해결력'을 핵심 역량으로 꼽은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출처: World Economic Forum).
제 경험상 이 3단계에서 가장 어려운 건 1단계입니다. 내가 믿어온 것을 스스로 틀렸다고 선언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불편합니다. 그런데 이 불편함을 통과하지 않으면 뉴러닝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AI를 공부하면서 저도 이 순서를 밟고 있는 중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언러닝과 그냥 새로운 걸 배우는 것, 뭐가 다른가요?
A. 일반적인 학습은 기존 지식 위에 새 지식을 쌓는 방식입니다. 반면 언러닝은 기존 지식 자체가 현재 환경에 맞는지를 먼저 의심하는 과정입니다. 30년 전 정설이 지금도 정설일 확률은 생각보다 낮습니다. 낡은 프레임을 유지한 채 새 정보를 쌓으면 판단 자체가 왜곡될 수 있습니다.
Q. AI 시대에 커뮤니티가 왜 더 중요해진다는 건가요?
A. 검색으로 얻는 정보는 AI가 이미 대체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는 정보 이상의 맥락, 즉 '이 사람이 왜 이 결론에 이르렀는가'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컴퓨터 그래픽이 급속도로 발전했을 때 교수와 학생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수평적으로 같이 공부하는 커뮤니티가 생긴 것처럼, AI 전환기에도 같이 배우고 같이 돈 버는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Q. 하루 두 시간 공부로 전문가 수준이 될 수 있다는 게 현실적인가요?
A. 대학 전공 70학점을 시간으로 환산하면 약 700시간, 하루 두 시간씩이면 1년이 채 안 됩니다. 물론 지도해주는 사람 없이 혼자 헤매는 시간도 있겠지만, 그 헤맴 자체가 언러닝의 핵심 과정입니다. 중요한 건 분량보다 방향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세 개의 좌표(10년 후·3년 후·3개월 후)가 잡혀 있다면, 두 시간의 집중도는 일반적인 학원 수강보다 높을 수 있습니다.
Q. 관계자본을 쌓으려면 어디서 시작해야 하나요?
A. 인간관계 네트워킹보다 인과관계 설계가 먼저입니다. 자신이 가진 경험의 원인과 결과를 언어로 정리하는 것, 즉 맥락을 글이나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상태가 출발점입니다. 그 맥락이 쌓이면 특정 키워드를 들었을 때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신이 떠오르는 상태가 됩니다. 그게 관계자본의 실체입니다.
결론
저는 꽤 오랫동안 배움에 돈과 시간을 과투자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정보를 사러 다녔지, 맥락을 쌓으러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AI 시대가 요구하는 건 더 많은 정보 습득이 아니라, 기존 정답을 의심하고 재정의하는 언러닝의 근육입니다.
지금 당장 거창한 것을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먼저 해본 것은 내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 하나를 골라 그게 지금도 맞는지 다시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작은 균열에서 언러닝이 시작됩니다. AI를 도구로 써서 전혀 다른 영역을 연결해보는 실험을 매일 조금씩 쌓아간다면, 이 J커브의 변곡점이 위기가 아니라 기회로 읽히기 시작할 것입니다.